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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도지정문화유산

성남 봉국사 대광명전 성남 봉국사 대광명전

성남 봉국사 대광명전

성남 봉국사 대광명전은 조선 현종 15년(1674)에 어린 나이에 죽은 명선·명혜 공주의 명복을 빌고자 왕실이 지은 법당이다. 이러한 내용은 「봉국사신창기」에 전한다. 또한 「봉국사신창기」의 기록과 건축에 사용된 목재 조사 결과 1673년에서 1674년 사이에 베어진 나무인 것으로 확인되어 대광명전의 건립 연대를 짐작할 수 있다. ‘대광명전’은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전각이지만 현재 목조아미타불(경기도유형문화유산)이 모셔져 있다. 불상이 바뀐 시기는 일제강점기로 추측된다. 건물 내부 천장에 매달려 있는 작은 집은 ‘닫집’이라 부르는데 이 닫집은 불상 주변을 더욱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어 조선 후기 왕실 사찰의 주요 사례로 손꼽힌다. 봉국사 대광명전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전체적으로는 9칸이다. 지붕의 크기는 서까래를 받치려고 기둥 위에 가로로 설치된 도리가 5개인 5량집이다. 지붕의 형태는 앞뒤 지붕면만 보이는 맞배지붕이지만 처음 지을 당시에는 옆면에도 지붕이 있는 팔작지붕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붕과 처마를 지탱하려고 설치된 공포는 기둥머리부터 짜임이 시작된 익공식이다. 익공식 공포는 17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형식으로 시대적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 대광명전 앞 좌우에는 궁궐 건축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동물 석상이 배치되어 마치 건물을 호위하고 있는 듯하다. 성남 봉국사 대광명전은 1980년에 경기도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가 2022년에 국가지정유산 보물로 승격되었다.

  • 지정종목

    보물

  • 지정일자

    2022. 12. 28.

  • 위치

    성남시 수정구 태평로 79(봉국사)

제2로 직봉 성남 천림산 봉수 유적 제2로 직봉 성남 천림산 봉수 유적

제2로 직봉 성남 천림산 봉수 유적

천림산 봉수는 부산 응봉 봉수에서 시작된 신호를 용인 석성산 봉수로부터 받아 최종 목적지인 서울 목멱산 봉수에 전달하는 제2로 직봉 노선의 마지막에 있었다. 25명의 봉수군이 배정되었으며 5명씩 조를 나누어 근무하였다. 시기에 따라 천천산, 천천현, 월천현, 천림산 봉수 등으로 명칭이 달라졌다. 2000년에 지역 주민이 현 위치의 봉수 유적을 제보함에 따라 기록에만 전해지던 천림산 봉수의 모습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발굴 조사로 5개의 연조(불을 피우는 아궁이), 방호벽, 담장 등과 봉수군들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특히 4연조에서는 불을 피워 재가 흘러내린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2019년 4개의 연조와 방호벽, 담장 등이 복원되었으며 1연조는 발굴 당시 모습 그대로 보존 조치 되었다. 2002년 경기도기념물로 지정되었다가 2023년 국가지정유산 사적으로 승격되었다.

  • 지정종목

    사적

  • 지정일자

    2023. 1. 10.

  • 위치

    성남시 수정구 달래내로 295

망경암 마애여래좌상 망경암마애여래좌상

망경암마애여래좌상

망경암 마애여래좌상은 망경암 우측의 자연 암벽 상단에 작은 장방형의 감실(龕室)을 만들고 그 안에 부조(浮彫)한 불상으로, 이 주위 14군데에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다. 서울이 한 눈에 보이는 이곳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걸쳐 임금이 친히 거동하여 나라와 백성의 평안을 기원한 장소이며, 세종의 일곱째 아들인 평원대군(平原大君, 1427~1445)과 예종의 아들인 제안대군(齊安大君, 1466~1525)의 명복을 빌기 위해 칠성단(七星壇)을 세워 칠성제를 지내면서 ‘칠성대(七星臺)’라 불렸다. 불상 주변에 새겨진 기록에 의하면 1897(광무 1)년에 이규승(李圭承)이 관음상을 새기고 절을 세웠다고 전한다.

  • 지정종목

    경기도 유형문화유산

  • 지정일자

    1980. 6. 2.

  • 위치

    성남시 수정구 태평로 55번길 72

성남 봉국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성남 봉국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성남 봉국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성남 봉국사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은 경기도 성남시 영장산에 있는 오래된 사찰인 성남 봉국사의 대광명전(보물)에 관음보살, 지장보살과 함께 모셔져 있다. 이 불상은 높이가 112cm인 중·대형 불상이며, 결가부좌(結跏趺坐) 하고 손 모양은 통인(通印)을 취하고 있다. 머리에는 나발(螺髮)이 있고, 정수리에는 경계가 불분명한 육계(肉髻)가 있다. 이마 위에는 반원형의 중앙 계주(髻珠)가, 정수리 부위에는 낮은 원기둥 모양의 정상 계주가 장식되어 있다. 네모난 얼굴에 가늘게 뜬 눈, 원기둥 형태의 코, 살짝 미소를 머금은 입은 17세기 전반 불상의 전형적인 인상과 같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완만한 곡선으로 새겨져 있어 1600년부터 1630년대에 제작된 불상의 표현과 유사하다. 불상의 얼굴에 비하여 신체가 크지만 얼굴과 신체 비율은 인체의 비율보다 균형 잡혀 있다.

  • 지정종목

    경기도 유형문화유산

  • 지정일자

    2016. 7. 22.

  • 위치

    성남시 수정구 태평로 79

성남 봉국사 아미타불회도 성남 봉국사 아미타불회도

성남 봉국사 아미타불회도

성남 봉국사 아미타불회도는 현재 주불전인 대광명전의 후불도(後佛圖)로 걸려 있다. 화기(畵記)에 따르면 1873년에 삼각산 흥천사에서 제작하여 영장산 봉국사에 모셔진 것으로 보인다. 크기는 가로 216.5cmm, 세로 176cm이며 가장자리는 흰색과 청색으로 꾸몄다. 이처럼 주불전 후불도가 가로로 길어지고 가장자리를 청색으로 마감하는 방식은 19세기 후반 불화의 특징이다.

  • 지정종목

    경기도 유형문화유산

  • 지정일자

    2016. 7. 22.

  • 위치

    성남시 수정구 태평로 79

성남 약사사 지장시왕도 성남 약사사 지장시왕도

성남 약사사 지장시왕도

성남 약사사 지장시왕도는 지장보살 삼존(지장보살, 도명존자, 무독귀왕)을 중심으로 십왕(十王)을 비롯하여 판관·사자·옥졸·장군 등의 권속을 배치한 불화로서, 1880년 경기도 고양군의 화양사(현 서울 광진구 영화사로 91)의 중단탱으로 봉안되었던 불화이다. 성남 약사사 지장시왕도에서처럼 병풍을 배경으로 하여 지장삼존을 중심으로 주변에 여러 단으로 권속들을 배치하고 시왕이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 등의 구성은 서울 경기지역에서 성행한 지장시왕도 형식 중 하나이다. 아울러 우두・마두신(牛頭・馬頭神)과 십왕이 들고 있는 홀 등에 강조하고자 하는 문양 등에 호분(胡粉)을 쌓아 올려 도드라져 보이게 하는 고분법(高粉法)이 시행되어 있는 점도 18세기 이후의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 불화 하단의 붉은색 종이에 적혀 있는 화기(畵記)에는 당시 궁궐의 상궁등의 시주로 봉안될 수 있었다는 흥미로운 기록이 실려있으며 다른 불화 화기에서는 아직껏 찾아 볼 수 없었던 화승의 소임을 책임 수화승인 ‘어화편수(魚畵片手)’, 표구 담당 화승인 ‘장회(莊繪)’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어, 당시 불화승 소임에 대한 연구 자료로서의 가치 또한 크다.

  • 지정종목

    경기도 유형문화유산

  • 지정일자

    2018. 9. 10.

  • 위치

    성남시 중원구 산성대로625번길 22

성남 법륜사 명 신중도 및 복장물 성남 법륜사 명 신중도 및 복장물

성남 법륜사 명 신중도 및 복장물

성남 ‘법륜사’ 명 신중도 및 복장물은 조선 왕실 종친 이규승(李奎承)의 시주로 1889년(고종26)에 제작되어 법륜사에 봉안한 불화이다. 신중도 화면 상단에는 천상의 세계를 표현한 제석천과 범천이 자리하고 있고 중앙부에는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 동자와 천동ㆍ천녀, 하단에는 위태천을 중심으로 민간 신앙의 산신과 도교신인 조왕신이 호위하고 있다. 양쪽으로 거의 대칭을 이루며 일ㆍ월궁천자와 용왕을 비롯한 호법 신장들이 좌우로 각각 다섯씩 배치되어 있다. 하단에 쓰여진 화기에는 제작시기와 봉안사찰, 시주자, 화원이 기록되어 있다. 신중도 뒷면에서 발견된 복장물은 종이로 만든 직사각형의 후령통을 황초폭자(黃綃幅子)가 감싸고 있는 형태이다. 후령통은 발원문과 오색사, 오보병, 흰 종이에 붉은 글씨로 쓰인 진언문 등으로 되어 있다. 이 불화는 법륜사의 실재를 증명해 줄 수 있으며, 구성 및 도안을 통하여 19세기 후반~20세기 초 경기 지역 신중도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또한 복장물은 봉인체제와 발원문 양식, 후령통의 구성측면에서 불화 복장품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 지정종목

    경기도 유형문화유산

  • 지정일자

    2021. 12. 9.

  • 위치

    성남시 분당구 하오개로 323

성남 법륜사 명 감로도 성남 법륜사 명 감로도

성남 법륜사 명 감로도

성남 ‘법륜사’ 명 감로도는 조선 왕실 종친 이규승(李奎承)의 시주로 1889년(고종26)에 제작되어 법륜사에 봉안한 불화이다. 감로도의 화면 상단에는 나란히 서 있는 칠여래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구름을 타고 있는 아미타삼존과 왕후장상, 선왕선후, 천둥과 번개를 일으키는 뇌신이 자리하고 있으며, 오른쪽에는 지장보살과 인로왕보살 등이 있다. 중앙에는 감로를 마신 중생들을 작법승(作法僧)이 극락세계로 천도한다는 내용이 표현되어 있는데 왕실과 백성, 조상을 영가천도하고 나라의 안정을 기원하는 제단을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하단에는 한 쌍의 아귀가 마주 보고 있는데, 아귀의 좌우로는 세속의 장면들이 그려져 있다. 장례, 영가천도 등의 장면이 묘사되어 있어 수륙화로서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화기에는 제작시기와 봉안사찰, 시주자, 화원이 기록되어 있다. 이 불화는 법륜사의 실재를 증명해 줄 수 있으며, 19세기 중엽 이후 감로도의 전형을 파악할 수 있고 왕실 구복을 위한 제의가 행해졌던 경기지역 왕실 불교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가치가 있다.

  • 지정종목

    경기도 유형문화유산

  • 지정일자

    2021. 12. 9.

  • 위치

    성남시 분당구 하오개로 323

이수선생묘 이수선생묘

이수선생묘

조선 중기의 문신인 충숙공 이수(李晬, 1569~1645)는 인조대의 종친(宗親)으로 자는 명원(明遠)이며, 시호(諡號)는 충숙(忠肅)이다. 덕양군(德陽君) 이기(李岐, 1524~1581)의 손자이자 풍산군(豊山君) 이종린(李宗麟, 1538~1611)의 아들이다. 학문이 뛰어나 1583(선조 16)년 15세 나이로 부정(副正)에 봉해졌고, 임진왜란 때에는 선전관(宣傳官)으로 활약하였다. 임진왜란 후 선원록(璿源錄)의 편수(編修)에 참여하였으며 1613(광해군 5)년 귀천군(龜川君)으로 진봉(進封)되었다. 1617(광해군 9)년 전라남도 순천에 유배되었으나, 인조반정으로 관직에 복귀하게 되었다. 1624(인조 2)년에 이괄(李适)의 난 때 공을 세우고, 정묘호란(丁卯胡亂) 당시에도 인조를 강화도로 호종하여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소덕대부(昭德大夫)에 올라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 도총관(都摠管)을 역임하였다. 죽은 뒤 정1품 벼슬만 기록할 수 있는 현록대부(顯錄大夫)에 오르기도 했다.

  • 지정종목

    경기도 기념물

  • 지정일자

    1980. 6. 2.

  • 위치

    성남시 분당구 궁내동 산17-1

이경석선생묘 이경석선생묘

이경석선생묘

이경석(李景奭, 1595~1671)은 인조에서 효종, 현종의 3대에 걸쳐 나라에 공헌한 재상이었다. 본관은 전주, 자는 상보(尙輔), 호는 쌍계(雙磎) 또는 백헌(白軒)이다. 아버지는 유간(惟侃)이며 어머니는 개성고씨 대호군 고한량(高漢良)의 딸이다. 이경석은 1613(광해군 5)년 진사가 되고 1617년 증광별시에 급제하였으나, 이듬해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비 상소에 가담하지 않아 삭적되었다. 1623(인조 1)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承文院)에 등용되었다. 이괄(李适)의 난 때 왕을 호종하였으며, 1627(인조 5)년 정묘호란 때는 체찰사 장면(張晩)의 종사관으로서 강원도 군사 모집과 군량미 조달에 힘썼다. 1636년 병자호란 때는 대사헌, 부제학으로서 인조를 남한산성으로 호종하고, 이듬해 삼전도비(三田渡碑)의 비문을 찬진(撰進)하였다. 1642(인조 20)년 심양에서 돌아와 대사헌, 좌의정 등을 거쳐 1649(효종 1)년에 영의정에 올라 효종의 북벌정책에 참여하였다. 1668(현종 9)년에 궤장을 하사받았다. 이와 관련한 사궤장과 <사궤장연회도첩> 이 경기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보물 제930호로 지정되었다. 이경석은 벼슬에서 물러난 후 성남의 판교로 옮겨 살다가, 뒤에 지금의 석운동에서 만년을 보냈다. 시호는 문충(文忠)이고 방산서원(方山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백헌집(白軒集)』등 유집 50여 권이 있다.

  • 지정종목

    경기도 기념물

  • 지정일자

    1985. 9. 20.

  • 위치

    성남시 분당구 석운동 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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